
몇 해 전, 전시장을 거닐다가 우연히 마주친 롱 빈첸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던 기억이 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조각이었는데, 재료 자체가 주는 친숙함과 동시에 인간의 얼굴과 역사가 겹쳐진 듯한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배경과 맥락을 추적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작품은 늘 현재의 시각으로만 읽히는 게 아니다. 같은 조각이라도 전시 공간, 조명, 혹은 관람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이를테면 지난 겨울, 한 갤러리에서 다시 본 빈첸의 작업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차갑게 다가왔다. 내가 지쳐 있던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종이 표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예술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순간의 경험은 사라지지만, 기록을 통해 다시 불러올 수 있으니까.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도 종종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을 단순히 ‘보았다’고만 남기는 것과, 그때의 공간 분위기나 개인적인 감정을 함께 적어두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기록이라는 것. 실제로 메모를 남겨두면 나중에 같은 작품을 재조우했을 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대화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축적된 기록이야말로 아카이브의 본질일 것이다.
롱 빈첸의 작업을 꾸준히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미적 탐구를 넘어 사회와 인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이라는 재료가 주는 유한성, 거기에 새겨진 얼굴들이 보여주는 시간의 흔적, 모두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연결된다. 이런 맥락을 놓치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감상보다는 누적된 기록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그때의 공기’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형상을 담지만, 글은 감정을 붙잡는다. 그래서 전시 후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간단한 메모를 정리하는 것이다. 어떤 조명이 작품을 감싸고 있었는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어떤 리듬을 만들어냈는지, 작품 앞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적어둔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 글을 읽으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또 다른 해석의 계기가 된다.
이곳에 남기는 글들도 그런 의도를 담고 있다. 롱 빈첸의 예술이 보여주는 풍경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주한 순간의 맥락을 세밀히 되살려 공유하는 것. 그렇게 쌓인 기록이야말로 또 다른 창작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백현우 큐레이터